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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성월 기고] 순교자, 삶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 “일상에서 하느님 증거하는 것이 곧 오늘날 순교”
[순교자성월 기고] 순교자, 삶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  “일상에서 하느님 증거하는 것이 곧 오늘날 순교”
순교선조들의 삶과 신앙은 신앙인들에게는 영원한 화두다. 9월 순교자성월에는 순교선조들이 현대 신앙인들에게 남겨준 신앙 유산을 더욱 깊이 묵상하게 된다. 오늘을 사는 신자들에게 순교는 ‘세상 속에서 세상과 다르게’ 사는 것이 아닐까. 본지는 순교 영성은 무엇이고 신자들이 어떻게 순교 영성을 살아낼 수 있을지에 대한 전문가 기고를 싣는다.


“그들 집안은 전멸했고, 그 집안 사람이 아무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몇 고을에 걸쳐 농토를 가지고 있었다는 유중철·이순이 집안이 모든 재산을 적몰당하고 집터는 연못이 되었다. 또 남녀가 동료로서 함께 일하면서 주문모 신부를 6년이나 모시며 교회 발전에 노력했던 강완숙과 그 여성동료들의 신앙공동체도 사라졌다. 그들은 조선사회에서 여성이 일을 할 수 있음을 드러내며 가히 ‘혁명적’ 생활을 했다. 물론 박해는 교우촌도 쓸어갔다. 교우촌은 신자들의 신앙·경제·생활 공동체였고, 박해로 거처를 잃은 이가 찾아들 지붕이었다. 유력한 회장들도 나란히 형장에서 스러졌다. 한국교회사에는 이러한 박해가 100년간 지속되었고 엄청난 순교자를 냈다.


■ 순교자의 얼, 사회가 함께 기억하고

사라진 이들은 시간 속에서 거대한 함성으로 살아났다. 그건 다만 신자들만의 감동은 아니다. 2014년에는 천주교 때문에 집안이 몰락하고 거제도에 관비로 보내졌던 유처자가 70평생 동정을 지켰음을 기리는 거제부사의 기록이 발견되었다. 관비는 동정으로 살 수 있는 결정을 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그는 스스로 동정을 결심하여 움집 속에서 지냈고 지역사회가 이를 존중해 주었다. 유처자는 동정부부 이순이의 시누이 유섬이로 추정된다. 한국교회사에는 동정부부로 4년을 산 이순이와 유중철, 그리고 15년을 동정부부로 살았던 이순이의 외가쪽 친척인 권천례와 조숙 부부가 있다. 이외에도 동정녀들은 역사 속에서 많은 일을 했다. 계산성당의 동정녀들을 비롯하여 각 성당이나 공소에 있던 동정녀들이나 예수성심시녀회의 뿌리가 된 여섯 정녀들은 활발히 활동했다. 동정녀들의 활동은 사회가 함께 공감했다. 교회의 덕이 사회의 덕과 일치할 때 큰 힘을 냈다.

순교자들은 전통사회에서 근대정신을 살아냈다. 그것이 미래의 변화를 예고하고 또 끌고가는 힘이 되었다. 예를 들면 과부가 재혼할 수 없던 조선시대에 가톨릭교회는 재혼을 허용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과부 재가를 주장한 것은 훨씬 뒤 동학혁명 때이다. 이에 반해 순교자들은 교회의 가르침을 조용히 실천하고 살았다. 그리고 요구된 순간에 자신들의 신앙을 증거했다.

순교의 실천적 힘은 평소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지 않은 데서 나왔다. 1801년 신유박해 때 배교하여 경상도 흥해로 귀양 간 최해두는 「자책」에서 “평일에 열심 봉사하여 신공을 세우는 이는 오주 예수를 효칙하여 치명대은으로 다 돌아가시고”라며 공로 없는 자신은 목숨을 붙이고 살아있다고 한탄했다. 순교자들이 평소 생활에서 지킨 것은 무엇인가? 박해시대 신자가 된다는 일은 이 세상과 자신을 구별하는 삶이었다. 순교자들은 모든 것을 떠났다. 그들은 버림으로써 주님과 세상으로부터 완벽한 자유와 해방을 누렸다. 그들은 박해자들에게서조차 인격을 볼 수 있었고 어떤 대항이나 불평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행복해했다.

2016년 9월 4일에 시성된 마더 데레사의 가난에 대한 태도, 주께 대한 절대적 의지는 바로 우리 순교자들의 모습이었다. 아직 사회에는 마더 데레사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많고, 많은 이들이 그를 만났다. 자신의 당대에 살았던 사람이 시성되는 일을 보는 것은 귀중한 ‘선물’이다. 그는 마치 한국 순교자들의 가난에 대한 개념을 우리에게 보여주러 온 것 같다. 순교자들은 살아서 주님을 따랐고 죽음으로써 이를 완성했다. 매순간 그리스도와의 일치가 순교

순교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주관적인 고백이 예수 그리스도 곁에 도달하는 객관적인 사건이 되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세례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재현하는 형식으로 그 죽음에 동참하게 하지만, 순교는 그 일 자체로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동일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는 박해시대 신자들과는 다른 처지에 있다는 점이다. 신앙의 자유를 얻은 이후 신앙생활 환경이 어떤 의미에서는 더 어려워졌다. 종교의 자유를 맞으면서 신자들끼리만 살던 생활에서 비신자들과 어울려 살며 사회생활에 참여하게 되었다. 교회는 대중의 교회가 되었고, 처음에 있었던 감격과 열정이 식어가면서 이제는 교회 내부에서 자주 위협이 대두되고 있다. 이제는 피 흘릴 시기가 아니나 반대로 훨씬 더 다양한 ‘박해’가 이뤄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매순간 그리스도와의 일치가 바로 순교임을 의심할 나위없다. 최해두는 도끼 밑에서 목을 잘리는 일은 순간적 순교이며, 은수자(隱修者)나 고수자(苦修者)는 사는 순간순간에 치명한다고 밝혔다. 순간마다 바른 응답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다. 게다가 오늘날의 순교는 하느님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 세상 안에 존재하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증인이며, 동시에 하느님으로부터 모든 인간에게 주어지는 존엄성을 증명하는 일이 되었다. 사회의 다양성에서 우리의 순교는 더욱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현재의 가난은 마더 데레사가 구하려 했던 물질적 가난과는 다르다. 고독이나 사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가진 넓고 황량한 새로운 들판인 것이다. 

우리가 박해시대 순교자와 가장 큰 차이는 베드로와 자캐오의 차이이다. 베드로는 모든 것을 두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고 자캐오는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모셨다. 박해시대 순교자들을 베드로에 비한다면, 세상일에 다 참여하면서 사는 현대 신자들은 자캐오에 가깝다. 더구나 현대 사회는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순교는 바라지 않고, 타협과 정치적인 술책들이 난무하게 된다. 제대로 정리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래도 ‘순교자들에 대한 기억은 피로 쓰인 그리스도교적 진리의 문서고’이다. 순교자들의 삶이 우리의 정체성을 깨닫게 하고, 우리가 갈 길을 말해준다. 순교자들의 모범과 기도, 그리고 그들과의 통공은 4차 혁명시대라는 급변하는 사회에서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열쇠가 될 것이다.
- 가톨릭 신문 게재된  김정숙 교수 순교자 성월 기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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