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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순교로 복음에 꽃 피워낸 조선 천주교 창립 현장

조선 천주교 창립 현장 성지순례 1박2일

상품기본정보

여행도시 교구별 거룩한 땅을 향하여 - 서울 경기
여행기간 2일
운행편

20인 이상 버스 or 4-8인 인원수에 맞는 차량

출발일 상시 출발

도착일 상시 도착

호텔(객실) 2인 ~4인 1실 호텔 or 리조트 or 동급 펜션
미팅장소 서울 경기 일대
대표요금 성인 ₩ 275,000 ~
소아 ₩ 265,000 ~
모객현황

상품가격

요금구분 가격 예약
2인 ~4인 기준 금액 숙소 확정에 따라 변동됨 140,000 예약하기

상품특전

 

►노쇼핑 노옵션 노팁 진행으로 경건한 마음으로 성지순례에 함께 하는 신자분들의 기도를 방해하지 않습니다.

►쾌적하고 깔끔한 숙박

►맛있는 식사로 성지순례 활동에 에너지를 만들어 드립니다.

►각종 바이러스 걱정없는 차량 소독은 물론 참가하신 신자분들 개별 체온 측정 및 차량내 소독제 비치

►출발 부터 성지 관련 안내는 물론 차량 운영이 가능한 드라이빙 스루 가이드가 함께하며 편안하게 모십니다.

►소수인원으로 현지 성지 미사에 참여 할 수 있는 경우 성지 미사 함께 합니다.

포함사항

► 전일정 전용차량

► 숙박비

► 1일차 중,석식 2일차 조,중식

► 성지순례 일정에 포함된 모든 일정

►여행자 보험 최대 5천만원 보장

 

불포함사항

►싱글 비용

►개인 간식 및 음료 주류 포함외 식사 및 입장료

►미사 봉헌시 봉헌비 및 예물

►여정 변경으로 인한 이동 차량비

쇼핑센터

NO쇼핑

일정표

명동 주교좌성당

명동 대성당은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본당이자 한국교회의 상징으로 1784년 이곳 명례방에서 최초의 신앙 공동체가 성립되었습니다. 그 후 1882년 한미 수호조약이 체결된 다음 블랑 백 주교가 종현의 땅을 부분적으로 매입하여 성당건립을 시도하던 중 신자수의 증가로 1892년 약현(현 중림동약현) 성당을 분가하고 코스트 신부가 성당 설계에 착수했습니다. 1896년 건립 도중 코스트 신부가 선종한 후 후임인 프와넬 신부가 성당 건축을 마무리하여 1898년 5월 29일 축성식을 갖고 한국교회의 주보인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께 성당을 봉헌했습니다.

 

1900년 병인박해 순교자들의 유해를, 1901년 기해박해 순교자들의 유해를 용산 신학교로부터 받아 지하성당에 모셨고, 1909년에는 왜고개에 매장되어 있던 순교자들의 유해를 지하성당에 안치했습니다. 1927년 백동(현 혜화동) 성당을 분가하고, 1939년 문화관을 신축하였으며, 1945년 광복을 맞아 성당명을 종현 성당에서 명동 성당으로 변경하였습니다. 기공 후 12년 만에 완공된 명동 대성당은 순수한 고딕 양식 건물로 그 문화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아 사적 제25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2009년 초 6년여의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마무리한 명동 대성당은 2010년 성당 보존과 시민에게 열린 광장 조성 및 사목 지원공간 확보를 위한 명동성당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2011년 9월 1단계 기공식을 가졌습니다. 3년의 공사 끝에 1단계를 마무리하며 2014년 9월 교구청 신청사 축복식을 거행했습니다.

 

김범우 집터

한국 천주교 최초의 증거자로 불리었고 최근에는 순교자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김범우(金範禹, 1751~1787, 토마스)는 서울의 역관 집안에서 태어났다. 김범우는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영세를 받고 돌아온 해 가을 또는 겨울에 수표교 인근에 있던 이벽(李檗)의 집에서 평소 친분이 있던 이벽의 가르침과 권면으로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고 입교하였다.

입교한 후 매우 열심한 신앙생활을 했고 가족과 역관 친구들을 가르쳐 입교시키고, 윤지충 등에게 교리를 전하거나 교회 서적을 빌려 주었으며, 스스로 교리를 철저히 실천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해 겨울부터는 자신의 집을 신자들의 집회소로 제공함으로써 ‘명례방 공동체’가 탄생하도록 하였다.

김범우는 1785년 봄 명례방 집회로 집회의 중심인물이던 이승훈(李承薰, 1756~1801, 베드로), 이벽(李檗, 1754~1785, 세례자 요한),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요한), 권일신(權日身, 1742~1792,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권철신(權哲身, 1736~1801, 암브로시오) 등과 함께 형조의 관리들에게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집주인이었던 중인(中人) 김범우는 가혹한 형벌을 당하고 지방으로 도배(徒配, 도배는 단순히 그냥 유배-귀양가는 것이 아니라 귀양 가서도 편히 있지 못하고 강제 노역이 부가된 형태의 처벌)되어 그곳에서 형벌의 여독으로 약 1~2년 후 36~37세의 나이에 선종하였다.

현재 명례방을 알리는 표지석은 없고 중구 을지로 2가 181 외환은행 앞 장악원 터 표석 자리 앞쪽을 김범우의 집 터로 보고 있다. 김범우의 묘소는 밀양군 삼랑진읍 용전동 산 102번지 만어산 중턱에 있다.

 

이벽의 집터

한국 천주교회의 최초의 영세자인 이승훈(李承薰, 베드로, 1756~1801)은 북경 북당(北堂)에서 예수회 선교사 그라몽(Grammont, 梁棟材, 1736~1812, 요셉) 신부에게 1784년 2월경 세례명을 베드로로 정하고 세례를 받고 귀국, 그해 9월(음력) 서울의 수표교 부근에 있던 이벽의 집에서 이벽과 권일신(權日身,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1742~1792), 정약용(丁若鏞, 요한, 1762~1836) 등에게 세례를 주었다.

다시 이벽으로 하여금 최창현(崔昌顯, 1759~1801, 요한), 최인길(崔仁吉, 1765~1795, 마티아), 김종교(金宗敎, 1754~1801, 프란치스코) 등에게 세례를 베풀게 하여 신자 공동체를 형성시켜 이들과 함께 한국 천주교회를 창설하였다. 교회는 세례를 통하여 결속된 복음 선포 기능을 수행하는 신앙 공동체이기 때문에 이 세례를 통해서 우리나라 천주교 첫 신앙공동체가 출발하게 되었다.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는 서울시의 협조를 얻어 한국 천주교회가 창립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이벽의 집이 서울 수표교, 현재의 서울시 중구 수표동 43번지와 종로구 관수동 152번지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는 정약용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의 기록에 근거해 그 근처에 기념 표석을 건립했다.

표석은 현재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105 건물 ‘두레시닝(주)’ 앞 현 삼일교와 수표교 사이 청계천변 인도에 세워져 있다. 이벽의 집은 수표교 남쪽, 현 기념표석 청계천 건너편으로 추정되나 마땅한 자리가 없어서 이곳에 설치했다.

 

좌,우포도청터

조선 중종 때인 16세기 초 서울과 인근 지역의 포도와 순라를 담당하도록 설치한 기관으로, 임금 거동시의 호위를 맡거나 유언비어 유포, 위조 엽전 제조, 도박, 밀주 행위 등을 단속하였다. 포도청은 이후 350여 년간 존속되다가 갑오개혁 때인 1894년 7월에 폐지되었으며, 이후 경무청으로 개편되었다.

 

서울 파자교(把字橋) 동북쪽(현 종로구 묘동 56번지) 즉 옛 단성사 자리에 있던 좌포도청에서는 서울의 동부 · 중부 · 남부 지역과 경기좌도 일대의 순라를 담당하였다. 우포도청은 혜정교(惠政橋) 남쪽(현 종로 1가 89번지) 즉 광화문우체국과 일민미술관(옛 동아일보사) 사이에 있었고, 서울의 서부 · 북부 지역과 경기우도 일대의 순라를 담당하였다.

 

경기좌도는 지금의 강화 · 인천 · 수원 · 양평 · 광주의 이남 지역을 말하며, 경기우도는 지금의 고양 · 파주 · 양주 · 가평 이북 지역을 말한다. 이중에서 천주교 신자들은 대부분 좌포도청의 관할 구역인 경기좌도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실제로 우포도청보다는 좌포도청에서 훨씬 많은 순교자들이 탄생하였다.

 

종로성당

서울대교구는 2013년 2월 28일 서울 좌 · 우 포도청을 관할구역에 둔 종로 성당을 포도청 순례지 성당으로 지정하고, 본당의 수호성인 또한 ‘포도청 순교 성인들과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로 변경해달라는 청원을 승인하였다. 이로써 100년에 가까운 박해 기간 중 가장 많은 순교자가 탄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하던 서울 좌 · 우 포도청 순교지가 새롭게 떠오르게 되었다. 서울시에서 설치한 좌포도청 표석은 현재 서울시 종로구 묘동 56번지(옛 단성사 자리) 종로 3가역 9번 출구 앞에, 우포도청 기념 표석은 종로구 종로 1가 89 일민미술관 앞 화단에 각각 자리하고 있다.

포도청 순례지 성당으로 지정된 종로 성당은 구내에 ‘포도청(옥터) 순교자 현양관’을 마련하여 2013년 9월 2일 염수정 대주교의 주례로 축복식을 가졌으며, 성당 외벽에 포도청 순교성인들을 기념하여 설치한 청동부조 ‘수난과 영광’(김일영 교수 작) 제막식도 가졌다. 아울러 종로 성당에서 시작하여 좌우 포도청 터 등을 거쳐 명동 성당과 중림동약현 성당에 이르는 2개의 도보순례길 코스를 제시하였다.

 

의금부터

의금부는 조선시대 왕명을 받들어 죄인을 추국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이다. 조선의 군사체제가 정비되면서 의금부 기능은 축소되어 정치범이나 중죄인 등을 다스리는 사법 전담 기관이 되었다. 의금부는 한양부 견평방(堅平坊)에 있었는데, 현재 지하철 1호선 종각역 1번 출구 인근의 SC제일은행 화단에 표지석이 서 있다. 천주교 박해시기, 천주교 신자들 중 중죄인, 즉 주교와 신부, 평신도 지도자들은 임금의 특별한 명령으로 의금부로 압송되어 신문을 받았다.

 

박해 당시, 이승훈(베드로, 1756-1801년),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 1759-1801년), 황사영(알렉시오, 1775-1801년) 등 많은 천주교 신자가 의금부에서 고초를 겪었다.

 

전옥서터

조선 시대에 죄인을 수감하였던 감옥으로 문종 때 전옥서로 개칭하였다. 전옥서는 감옥과 죄인에 관한 사무를 관장했던 관서였다.

 

전옥서의 옥사는 남자 옥사와 여자 옥사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남옥과 여옥은 각각 담장이 둘러져 있고 각 담장에 출입문이 있었다. 또 죄의 크고 작음에 따라 분리 수용하도록 하였다. 박해시기 많은 천주교인들이 형조로 이송되어 심문을 받고, 형이 집행되기 전까지 전옥서에 수감되었다. 1801년 신유박해 때에는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유관검 등이 형조에서 의금부로 이송되었다가 전주에서 참수되었고, 강완숙 골롬바, 최필제 베드로, 김현우 마태오 등은 형조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서소문에서 순교하였다.

기해박해 때에는 남명혁 다미아노 성인과 정정혜 엘리사벳 성녀가 형조에서 심문을 받은 후 참수되었고, 김대건 신부의 아버지인 김제준 이냐시오 성인은 의금부에서 형조로 이송되어 처형될 때까지 전옥서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이호영 베드로 성인은 4개월 동안 전옥서에 갇혀 있다가 옥사하였다. 병인박해 때에도 많은 순교자들이 전옥서에 수감되어 있었는데, 전장운 요한 성인과 최형 베드로 성인 등은 의금부에서 신문을 받은 후 형조로 이송되어 사형 판결을 받고 서소문밖에서 참수되었다. 전옥서 터 표지석은 지하철 1호선 종각역 6번 출구 도로 쪽 화단에 있다.

 

 

경기감영터

감영(監營)은 각 도의 관찰사가 기거하는 관청을 말한다. 관찰사(감사)는 조선시대 지방 행정의 최고 책임자로, 관할 지역 내에서 군사 · 행정 · 감찰 · 사법권을 행사했다. 경기감영은 경기 관찰사가 있었던 곳이다. 현재 서울적십자병원 정문 옆 도로변에 표지석이 서 있다.

 

1784년 조선 천주교회가 창설된 이후, 경기 지역에는 신자들이 크게 증가하였다. 점차 확산되어 가던 경기 지역의 신앙공동체는 1801년 신유박해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다. 체포된 신자들이 경기감영으로 이송되어 혹독한 형벌과 문초를 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조용삼(베드로, ?-1801년)이 순교했다.

 

조용삼은 정약종(아우구스티노, 1760-1801년)의 문하에서 천주교 교리를 배웠는데, 몸이 쇠약했음에도 혹독한 형벌에 굴하지 않고 신앙을 고백했다. 그는 마지막 형벌 때 “하늘에는 두 명의 주인이 없고, 사람에는 두 마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천주를 위해 한 번 죽는 것뿐이며, 다른 말씀은 드릴 것이 없습니다.”라고 박해자들에게 신앙을 고백하였다고 전해진다.

 

조용삼은 2014년 8월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형조터

조선시대의 중앙 행정조직의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의정부와 6조이다. 의정부는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합좌기관으로 3정승은 나라의 중요한 정사를 논의하고 그 합의를 거쳐 국왕에게 품달하며 왕의 결재는 의정부를 거쳐 해당관서에 전달되었다.

6조는 의정부 아래의 나라의 행정 실무(정무)를 나누어 맡은 기관으로 이부, 호부, 예부, 병부, 형부, 공부가 있으며 그 장관을 판서, 차관을 참판이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형부가 형조이다.

형조는 한성부 서부 적선방에 있었는데,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이후, 많은 천주교인들이 형조로 압송되어 문초를 받았다. 그 시작은 정조가 즉위한 지 9년째 되던 1785년에 발생한 ‘을사추조적발사건’으로, 신자들이 명례방에 있던 김범우 토마스의 집에서 집회를 갖던 중, 형조의 금리들에게 발각되어 형조로 압송된 사건이었다.

이후 1801년 신유박해 때에는 최필공 토마스, 최필제 베드로, 윤운혜 루치아, 정철상 가롤로 등이 형조에서 문초를 받았고, 김천애 안드레아,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윤지헌 프란치스코 등은 전주에서 서울로 압송되어 신문을 받았다. 1839년 기해박해 때에는 이광헌 아우구스티노, 남명혁 다미아노, 김효임 골롬바, 김효주 아네스, 김제준 이냐시오 성인 등이 형조에서 문초를 받았으며, 1866년 병인박해 때에는 전장운 요한, 최형 베드로 성인 등도 형조를 거쳐 갔다.

형조 터 표시는 5호선 광화문역 세종문화회관에서 세종로공원 쪽 도로 바닥에 매립되어 있다.

 

한국천주교 순교자 124위 시복터

광화문 광장은 조선시대 의금부, 포도청, 서소문 형장 등 한국 교회 순교자들이 목숨을 바친 장소들과 가까운 곳이다. 2014년 8월 16일 한국 천주교회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 순간인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거행되었다. 보통 시복 미사는 교황청 시성성 장관이 교황을 대리하여 거행하는데,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순교자의 땅 한국에 와서 직접 시복미사를 집전하였다.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식은 한국 천주교회 역사상 세 번째로 열린 시복식이었다.

2015년 8월, 124위 복자 시복 1주년을 기념하여 표석(바닥 돌)을 설치 하였다.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는 광화문 북측 광장에서 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주례로 조규만ㆍ정순택ㆍ손희송 주교와 사제단이 함께한 가운데 기념 표석 ‘한국 천주교 순교자 124위 시복터’ 축복식을 거행했다.

가로 170㎝, 세로 100㎝ 크기로 제작된 기념 표석에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2014년 8월 16일 이곳에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복자 반열에 올려 이를 온 세상에 선포하신 것을 기리고자 이 돌을 놓습니다”라는 글이 한글과 영문, 한문, 스페인어로 새겨져 있다. 기념 표석 관리는 세종로본당에서 맡았다.

 

가회동성당

서울대교구 소속 본당(순례지).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57(가회동 30-3) 소재. 1949년 9월 명동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다. 설립 당시 주보는 선교의 수호자인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였으나, 2014년 124위 시복식을 계기로 복자 주문모(周文謨) 야고보와 복녀 강완숙(姜完淑) 골롬바를 공동 주보로 정해 2018년 3월 30일 교구장의 승인을 받았다.

 

가회동 성당이 위치한 북촌 일대는 최초의 선교사인 복자 주문모 야고보 신부가 조선에 밀입국해 1795년 4월 5일 부활 대축일에 복자 최인길(崔仁吉) 마티아의 집에서 조선에서의 ‘첫 미사’를 집전한 곳이다. 그리고 본당 관할구역 또한 주문모 신부가 복녀 강완숙 골롬바의 집에 숨어 지내면서 사목활동을 펼쳤던 지역으로 한국 교회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젊은이들의 활기가 넘치는 대학로 뒤편 낙산 산등성이 위에 한국 천주교회를 이끌어 나갈 젊은 신학도들의 못자리인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이 자리하고 있다. 신학교 성당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방인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모셔져 있어 이 땅의 참된 목자가 되려는 신학도들의 모든 삶과 함께하고 있다. 1855년 충청도 제천 배론에 설립된 성 요셉 신학당에서 시작된 가톨릭대학교의 역사는 박해를 이겨내고 1885년 강원도 여주군 범골(부엉골)에 예수 성심 신학교를 설립하였고, 2년 뒤인 1887년에 서울 용산으로 신학교를 이전하였다.

 

1942년 일제에 의해 용산 신학교가 강제로 문을 닫기도 했지만, 해방과 함께 경성 천주 공교 신학교로 개칭하여 다시 문을 열었고, 성신대학이라는 명칭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54년 가톨릭대학 의학부라는 이름으로 의학대학이 설립되었고, 1995년에는 성심여자대학교와 통합하여 명실상부한 종합대학의 면모를 갖추었다. 2015년에는 개교 16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를 갖고 새로운 도약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서소문 성지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는 새남터와 더불어 조선 왕조의 공식 처형장이었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 이래 이곳에서 순교하신 분 중 신원이 확인된 분만도 100명이 넘습니다. 이 가운데 44위가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전래 200주년 행사를 위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어 단일 순교지로는 가장 많은 성인을 배출한 곳입니다. 또한 한국교회가 추진한 124위 초기 순교자와 증거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에 대한 시복절차에 강완숙 골룸바를 비롯한 서소문 순교자 27위가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되었었고, 이들은 모두 2014년 8월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습니다. 이날 교황은 시복미사에 앞서 서소문 순교성지를 참배하여 순교자들의 정신을 기렸습니다.

 

중림동약현 성당(옛 약현 성당)은 1891년 서울에 두 번째 본당으로 설정되었고, 1898년에 완공된 명동 성당(옛 종현 성당)보다 6년 앞선 1892년 한국교회 최초의 서양식 벽돌 건축물로 완공되었습니다. 1905년 종탑 꼭대기에 첨탑을 올렸고, 1921년에는 성당 내부 칸막이를 철거하고 벽돌기둥을 돌기둥으로 교체하였습니다. 1974년부터 대대적인 해체 복원공사를 통해 1977년 사적 제252호로 지정되었으나 1998년 한 취객의 방화로 소실되어 1년 6개월의 재복원공사 끝에 2000년 9월 건립 당시 원형에 더 가깝게 복구하여 다시 축복식을 가졌습니다. 서소문 순교성지를 품 안에 두고 있는 성당으로서 1991년 본당 설정 100주년을 맞아 서소문 순교자 기념관을 건립하였고, 1999년에 서소문 공원 안에 1984년에 건립되었다가 1997년 철거당한 순교자 현양탑을 새로 제작하여 세웠습니다. 2009년 9월 13일에는 기존의 피정의 집으로 쓰던 곳을 증개축하여 서소문 순교성지 전시관으로 새롭게 개관하였습니다. 한편 2011년 서울대교구가 '서소문 밖 역사유적지 관광 자원화 사업'을 제안하고 정부와 지자체의 협조로 2019년 서소문역사공원(지상)과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지하)을 조성해 5월 29일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 축성식을 거행하고 6월 1일부터 박물관을 개관했습니다.

 

중림동약현성당

한국 천주교회 200여 년의 역사 중 신앙의 자유가 인정된 이후 100년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는 성당이며, 한국 천주교회를 태동시키고 이끌어 온 순교자들의 피와 44위의 성인을 탄생시킨 신앙의 못자리인 서소문 밖 순교 성지 주변에 세워진 성지 순례 기념 성당이다.

1886년 한불 조약이 체결된 뒤 서울에서 천주교 신자가 증가하자 1887년에 블랑(Blanc, 白圭三, 1884~1890, 요한) 주교는 이곳 순화동의 수레골에 교리 강습소를 설립하여 강당을 짓고 교리를 가르쳤는데 이것이 공소가 되었다. 1890년에 이르러 문밖 공소가 문안 본당(종현, 지금의 명동)을 능가하게 되었다. 문안이 586명이요, 문밖이 950명이었다.

1890년 블랑 주교는 직접 맡아보던 종현 본당을 두세(Doucet, 丁加彌, 1853~1917, 가밀로) 신부에게 맡겼고, 두세 신부는 블랑 주교가 별세한 뒤 새로 부임한 뮈텔(Mutel, 閔德孝, 1854~1933, 아우구스티노) 주교에게 문밖에 새 본당을 증설할 필요성을 설명하였다. 이를 위임받은 두세 신부는 이미 매수한 대지에 1891년 10월 27일에 성당의 정초식을 거행하였다.

당시 부주교이던 코스트(Coste, 高宜善, 1842~1896, 요한) 신부는 약현 성당을 설계하고 직접 건축을 지도하였다. 정초식이 있은 지 1년 만에 준공되었으나 프랑스에 주문했던 종이 도착하지 않았고, 가을에 피정을 계기로 신부들이 모이는 기회에 축성식을 성대히 하기 위하여 1893년 9월 25일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이 성당이 자리 잡은 언덕이 서소문 밖 약현이었기 때문에 약현 성당으로 불렸다. 구조는 삼랑식의 약식화된 고딕 양식으로서 정면은 어칸과 협칸의 구별이 나타나지 않으며 건물이 낮은 관계로 고딕 건물의 특색인 뾰족아치를 쓰지 않고 둥근 아치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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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문 예약 발생효력 시기는 계약금입금과 동시에 성립하며 상품예약후 취소를 할 경우에는 아래와 같이 계약금 환불규정 및 여행상품 판매가 기준으로 취소료가 발생합니다.

제1조. 계약금 환불규정
- 신혼여행 계약후 7일이내 취소시 계약금 전액 환불되며, 7일 이후 취소시에는 계약금 전액
환불되지 않습니다.
(단, 환불전액 및 일부 불가라고 사전공지된 항공좌석과, 호텔에 대한 선납금은 날짜와 관계없이
입금과 동시에 전액 환불되지 않습니다.)

제2조. 리조트 취소 위약금 규정(선입금 및 계약금 별도)
- 출발일기준 30일전 취소시 상품판매가의 10% 취소위약금 배상
- 출발일기준 29 ~ 21일전 취소시 상품판매가의 20% 취소위약금 배상
- 출발일기준 20 ~ 15일전 취소시 상품판매가의 30% 취소위약금 배상
- 출발일기준 13 ~ 2일전 취소시 상품판매가의 50% 취소위약금 배상
- 출발일기준 1 ~ 당일 취소시 상품판매가의 100% 취소 위약금
- 단 풀빌라 및 특수지역의 리조트는 위 규정과 상관없이 화이날통보(여행 진행의 최종확인)한
날부터 취소 위약금이 발생되며, 전체 리조트 요금에 100% 취소 위약금 배상




- 국제유가와 항공사의 영업환경을 고려한 국토교통부의 국제선 항공요금과 유류할증료
확대방안에 따라 예고 없이 인상되거나, 인하된 금액이 반영될 수 있습니다.




- 당사의 모든 기획 상품은 여행자 보험에 가입됩니다.
(만 1세 이상 ~ 만 89세 미만의 경우만 해당됩니다.)
일반 상해 - 최대 300만원, 질병 - 최대 100만원, 휴대품 도난 및 파손 - 최대 30만원 등
- 상세내용은 약관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1억 여행자 보험 가입)




- 출발 전 설명회는 출발 3 ~ 7일전에 진행됩니다.
- 설명회는 전화 또는 메일로 진행됩니다.
- 설명회 시 공항 미팅여부, 시간, 장소 그리고 출국편명을 꼭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가방은 여행기간에 맞춰 크기를 선별하여 준비하시고, 보조가방(쌕, 크로스백)을 따로 준비하시면
좋습니다.
- 의류와 속옷, 양말 등은 여행지의 기후, 일정에 맞춰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 더운 지방의 경우 수영복, 물안경, 선글라스, 모자, 선크림, 파라솔 등을 준비하시고, 냉방시설을
감안하여 긴팔남방을 준비하셔야 됩니다.
- 칫솔, 치약, 면도기, 샴푸, 린스, 화장품, 여행용화장지등 개인위생용품은 따로
준비하셔야 합니다.
- 디지털 카메라인 경우는 메모리카드 및 예비 바테리를 여행일정에 맞게 준비하시고
충전기도 잊지마시고 준비하십시요.
*여행지역에따라 전압 콘센트 또는 어댑터가 틀릴 수 있으므로 여행사에 꼭 문의 바랍니다.
- 카메라(필름사용)소지하신분들은 출발전에 여분의 필름을 충분히 준비하시고 또한
건전지는 넉넉하게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 수첩과 필기구, 회화집 등도 준비하시면 편리합니다.
- 개인취향에 맞게 컵라면, 김 등 밑반찬을 준비하시고, 구급상비약도 챙기시기 바랍니다.

* 기내휴대품 반입 금지 품목은 미리 붙이는 가방(수화물 또는 위탁수화물)
예) - 건전지, 면도기, 손톱 깎기, 칼 등은 기내용 가방에 넣을 수 없으므로 붙이는 가방에 넣어주세요.

- 100ml를 초과하는 액체, 분무, 겔류 등도 붙이는 가방에 넣어주세요.

* 라이터는 붙이는 가방에 넣을 수 없으므로 휴대가방에 1인 1개만 허용됩니다.






- 2007년 3월 1일부터 국제선을 이용하시는 모든 승객들은 100ml가 초과하는 액체, 분무, 겔류의
기내 휴대 반입이 제한되었습니다.
- 100ml이하의 등 물품은 별도의 정해진 팩(일명 지퍼백)에 넣어 반입하셔야 되며, 100ml를 초과
하는 물품은 반드시 붙이는 가방에 넣으시기 바랍니다.

- 국토교통부는 국민여행편의 제고와 동시에 항공보안 강화를 위해 2014년1월1일부터
[항공기내 반입금지 물품]을 변경하여 시행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국토교통부 [항공기 반입금지 물품]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관련 홈페이지: http://www.molit.go.kr/doc/apdg/guide1.jsp#

- 위의 사항으로 출국수속시간이 지연될 수 있으므로 정해진 미팅시간을 준수하여주시기 바랍니다.





- 유명 관광지 및 기차역 주변, 기타 사람이 많이 밀집된 곳에서는 소매치기 또는 분실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므로 특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여행 중 도난에 의한 물건 분실의 경우 반드시 현지 경찰서의 경위서(Police report)를 받아오셔야
보험적용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본인 실수에 의한 분실은 보험 처리되지 않습니다.)

[여행경보단계안내]

외교통상부에서는 해외여행, 체류시 특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국가와 지역에 경보를 지정하여 위험수준과 이에 따른 안전대책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남색경보(여행유의 일부)/황색경보(여행자제 일부)/적색경보(철수권고 일부)/흑색경보(여행금지) 4단계로 구분하여 지속적으로 변경되고 있으니 출국 전 꼭 확인을 부탁드리며,
해외여행 등록제를 이용하시면 해외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건, 사고로부터 효율적인 도움을 제공해드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외교통상부 여행경보제도 안내 페이지(http://www.0404.go.kr/country/warningList.do?menuNo=1020000)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여행경보단계안내]
외교통상부에서는 해외여행, 체류시 특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국가와 지역에 경보를 지정하여
위험수준과 이에 따른 안전대책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남색경보(여행유의 일부)/황색경보(여행자제 일부)/적색경보(철수권고 일부)/흑색경보(여행금지)
4단계로 구분하여 지속적으로 변경되고 있으니
출국 전 꼭 확인을 부탁드리며, 해외여행 등록제를 이용하시면 해외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건,
사고로부터 효율적인 도움을 제공해드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외교통상부 여행경보제도 안내 페이지(http://www.0404.go.kr/country/warningList.do?menuNo=1020000)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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